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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난스럽게도 이어폰을 무선 → 에어팟 → 러닝용 → 다시 유선으로 바꿨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다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인스타 광고에서 줄 달린 고성능 이어폰을 보고 또 눈이 갔던 날,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집에 이어폰만 서너 개인데 왜 또 새로운 게 특별해 보이는 걸까요. 그날부터 뭔가를 사기 전에 '이거 진짜 필요한가'를 한 번씩 물어보게 됐습니다.

이어폰만 몇 개?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편이에요. 공간을 딱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놓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이 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그 '지금 지내는 환경'에 익숙해지면 가끔 무료해진다는 거예요. 1년에 두세 번쯤은 뭔가 확 바꿔버리고 싶은 충동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이것도 필요해 보이고 저것도 필요해 보이더라고요.
이어폰이 딱 그 패턴이었습니다. 원래 줄 달린 이어폰을 쓰다가 줄이 불편해서 무선이어폰으로 바꿨어요. 그다음엔 노이즈캔슬링이 갖고 싶어서 에어팟을 샀고, 한참 쓰다가 러닝 할 때 편한 이어폰을 또 샀습니다. 그러다 최근엔 오히려 옛날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져서 다시 유선 이어폰을 찾아보게 됐어요. 계속 뭔가에 만족을 못 하는 거죠. 지금 이것들, 대부분 창고 어딘가나 박스 안에 처박혀 있을 겁니다. 사실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생각해 보면 이어폰한테 제가 바라는 기능은 결국 세 가지, 통화하고 음악 듣고 외부 소음 차단하는 것뿐인데, 이미 그거 다 하는 물건이 서너 개나 있는 거예요. 이 이상은 그냥 욕심이다 싶었습니다. 이미 기능하는 걸 하나 더 늘리는 게, 저한테는 불필요한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자각했어요.
포장 뜯는 기분, 정말 하루도 안 갑니다
솔직히 새 물건 포장 뜯을 때 그 순간만큼은 좋아요. 근데 그 기분, 진짜 하루도 안 가더라고요. 물컵이나 텀블러처럼 이미 집에 있는 걸 또 사는 경우가 특히 그랬습니다. 아예 없던 걸 편의상 새로 사는 건 괜찮은데, 이미 기능하는 물건을 또 늘리는 건 저한텐 그냥 순간의 만족만 주고 끝나더라고요.
지금 또 텀블러랑 물컵만 세어봐도 3~4개씩 됩니다.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줄이려고 해요. 그냥 버리긴 아까우니 중고거래 어플에 정리해서 올릴 생각입니다. 물건이 늘어날수록 집은 채워지는데, 통장 잔고는 그만큼 비어가더라고요. 물건이 쌓이는 만큼 여유는 줄어드는 거죠.
사실 이런 것들이 딱히 못 쓸 물건들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예요. 멀쩡하게 잘 쓰고 있던 텀블러가 있는데도 예쁜 디자인을 보면 또 사고 싶어지고, 물컵도 이미 몇 개나 있는데 세일한다는 이유로 하나 더 담게 됩니다. 사놓고 나면 그 순간엔 만족스러운데, 며칠 지나면 원래 쓰던 것만 계속 손이 가고 새로 산 건 찬장 구석으로 밀려나요. 그러다 보니 찬장을 열 때마다 겹치는 물건들이 눈에 밟히고, 이게 다 돈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더라고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 집 안은 안 쓰는 물건들로 채워지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이제라도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통신비 절약, 연 60만원 아낀 마당에
지난번 글처럼 얼마 전에 통신비를 알뜰폰으로 바꾸면서 월 5만원, 연으로 치면 60만원 정도를 아끼게 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돈을 아끼고 나니까 오히려 다른 데서 욕구가 튀어나오더라고요. 뭔가 하나를 졸라매면 다른 쪽에서 풀어버리고 싶어지는 심리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스타에서 그 유선 이어폰 광고를 봤을 때, 이번엔 진짜 안 샀습니다. 통신비 아끼려고 그렇게 알아보고 바꿨는데, 그 돈으로 또 충동구매를 해버리면 결국 제자리걸음이잖아요. 아낀 돈을 지키는 것도 아끼는 노력만큼 중요하다는 걸 이번에 알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절약이라는 게 참 이상해요. 한쪽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면 그 긴장이 어딘가로는 풀리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통신비를 줄였다는 뿌듯함이 오히려 "이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핑계로 둔갑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딱 그 타이밍에 결제 버튼을 눌렀을 텐데, 이번엔 광고 화면을 몇 초 더 들여다보다가 그냥 껐습니다. 어차피 지금 있는 이어폰들로도 통화, 음악, 노이즈캔슬링까지 다 되는데 뭘 더 채우려는 건지 스스로한테 물어봤거든요. 그 몇 초의 망설임이 예전과 달라진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뭘 사기 전에 일단 하루만 미뤄보고, 그 물건이 지금 집에 있는 것들이랑 정말 다른 역할을 하는지부터 따져보려고요.